기고문-표절, 그 경계를 넘어 -신경숙 표절 논란

유명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으로 인터넷이 시끄럽다. 이 뉴스를 처음 접하고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 정도로 문장력을 갖추고 작품을 내는 전업 작가라면 글을 쓸 때, 귀찮아서라도 타인의 책을 베껴 쓰지는 않겠지. 나라면 베끼는 일이 번거로워서라도 그런 행위는 못하고 습관대로 써내려 갈 것 같기에, 표절이라는 주장이 별 신빙성이 없게도 들렸다.

그런데 표절로 지칭되고 있는 문장과 단락을 비교해 본 후에 생각이 좀 달라졌다. 신경숙을 비롯해서 아름다운 문체를 지닌 우리 나라의 많은 작가들이 어릴 적 부터 다른 작가들의 좋은 문장들을 수없이 베끼는 연습을 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역시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그런 식으로 문장 연습을 하고 있을 터이다. 그 결과 천편일률적으로 앵무새 같은 문장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나. 그와 같은 작품들 속 문장들이 매끄럽기는 하지만, 담겨져 있어야 할 내용들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한 때 문학청년이었던 법정스님도 젊은 시절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만나면 수없이 필사하며 외웠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 연습을 너무 반복하다 보면, 남의 문장을 별 스스럼 없이 자기 문장인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간혹 문장은 아름답지만 읽고 나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작품을 놓고도 문학적으로 호평이 쏟아지는 걸 본다. 아름다운 문장은 당연히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내용이 사라진, 아름다운 문장만을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사의 힘 보다는 유려한 문장에 후한 평가를 내리는 문학평론가들의 잣대는 이제 거두워져야 한다. 모든 게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탄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결과이다.

최근에 어느 젊은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나서 기분이 좋았다. 우선 청승스런 신파조를 벗어난 작가의 역사 의식이 반가웠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신선한 문장들이 빚어내는 해학을 통해 빛나고 있었다. 고유한 우리만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 낸다면 외국인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자연스레, 요즘은 거의 사그라진, 우리 이야기가 세계 문학이 될 가능성에 대한 담론들이 떠올랐다. 다소 과장이지만, 이제 우리 나라의 경계를 뛰어 넘는 작가가 나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기다리는 일만 남은 듯 싶다.(기고자의 요청에 의해 기고자는 익명으로 처리 합니다.)

(편집자 주-신경숙 표절비교)

-일본작가 우국의 구절-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우국,233쪽 )

-신경숙의 단편 전설의 구절-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단편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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