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명대사죠. 범인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 가냐'는 메시지를 담은 애드립이였다고 합니다. 목숨을 부지할 자격이 있느냐는 힐난이겠죠. '밥'이란 이처럼 우리에게 삶을 이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이자 일상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한데 최근 조짐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런 밥이 밥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때문이죠.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밥 안 먹고 다닌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4g으로 전년보다 3.3% 감소했습니다. 하루에 공깃밥 2그릇도 채 먹지 않는 셈입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계시는 분들께도 여쭤보겠습니다. 삼시세끼를 밥으로 꼬박 먹었던 날이 얼마나 있었나요? 과거보다 그 횟수는 줄지는 않았는지요?

실제로 연간 쌀 소비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 1998년 당시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99.2kg였습니다. 혼자서 쌀 한 가마니(80kg)는 넉넉히 더 먹은 꼴이죠. 그러나 이후 꾸준하게 우리는 밥공기의 양을 줄여나갔습니다.

2006년 들어 연간 소비량이 78.8kg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80kg의 벽이 깨졌습니다. 이후 단 한 번의 반등도 없이 줄곧 하락하다 2012년엔 69.8kg으로 70kg 아래로 떨어집니다. 지난해는 불과 62.9kg에 그쳤습니다. 얼마나 밥을 멀리했는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정확히 30년 전에는 이것의 두 배가 넘는 128.1kg을 소비했답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밥상의 모양새가 크게 바뀐 것이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는 어떨까요. 바로 일본과 대만입니다. 쌀 소비량의 하락은 세계적으로도 어쩔 수 없는 추세인듯합니다. 두 나라 모두 줄곧 소비량이 줄었거든요. 특히 일본의 경우 쌀 기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일본 농림수상성에 따르면 일본의 20대 남성 10명 중 2명은 한 달 동안 쌀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2013년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비교해 봤습니다.

한국(67.2kg)>일본(56.9kg)>대만(45.0kg) 순입니다. 양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인 1위네요. 일본보다는 10kg 이상, 대만에 비해서는 20kg 이상 더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증감폭도 궁금합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의 쌀 소비량은 약 14%를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대만도 큰 폭으로 내렸습니다. 10%가 넘게 줄었네요. 그래도 한국보다 감소폭이 적습니다. 일본은 0.65% 감소로 선방했고요.

함께 밥을 안 먹는다고 해서 위안 삼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과 대만은 감소폭이 완만한 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만은 2010년에서 2013년까지 쌀 소비량 감소폭이 2.6%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기간 일본은 4.37%였고요. 7.69%를 기록한 한국에 비하면 선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밥먹으면 살찐대요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밥 소비량이 주는 걸까요. 먼저 밥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이 비만을 유발한다는 속설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유로 밥을 피한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10년 가까이 자취 생활을 하는 한 20대 여성의 말을 잠시 들어 보겠습니다. "밥을 지어 본 적도 없고, 잘 먹지도 않아요. 먹으면 살이 많이 찔 거 같아서 일부러 피하죠. (오늘 밥을 몇 번 먹었느냐고 묻자) 음…. 점심 때 한 번이요. 그러고 보니 어제도 밥은 한 번밖에 안 먹었네요."

조선시대 병사들의 밥상을 재현해 놓은 모습 -밥그릇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동대 호텔외식조리학과 지명순 교수는 "식품영양학적인 측면에서 밥을 통해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소화 시간이 길고, 포만감을 줘 체중조절에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다만 설탕, 과당, 밀가루 등의 인공 정제된 탄수화물은 섬유질이나 필수지방산이 모두 제거된 채 칼로리만 높아 비만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밥에 든 '좋은' 탄수화물을 적당량 섭취해야 체중 관리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식습관의 변화도 밥상에서 밥을 점차 몰아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12월 한 대형마트가 3년간 매출 순위를 조사해서 발표했는데요, 그해 일반 쌀은 15위를 기록한 반면 빵류는 10위를 차지해 순위가 역전됐습니다. 일반 쌀의 매출 순위 경우, 2013년부터 매년 7→9→15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식품공학전문가 최낙언 씨 역시 "밥을 중심으로 밑반찬과 함께 먹던 기존 식문화가 달라진 것"을 쌀 소비 감소의 원인 중 하나로 꼽습니다. 그는 "이젠 밥 말고도 먹을 게 많아진 세상이 됐다"고 말합니다.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밥을 외면한 이들은 "바빠서"라고 입을 모읍니다. 지난해 새신랑이 된 한상호(34)씨는 "결혼 이후 아침에는 늘 밥 대신 시리얼을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맞벌이 부부여서 아침에 밥 차릴 시간이 없다"며 "간단하고, 설거지도 안 나오는 간편식을 애용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곳간에 쌀은 쌓여만 가고…

쌀을 찾지 않으니 재고량은 쌓이기만 합니다. 지난해 정부양곡의 재고는 190만t이 넘었습니다. 이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제시한 적정 수준인 80만t의 2배가 넘는 양입니다. 쌀 생산량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4백만t 이상을 유지했기 때문이죠. 2012년부터 작년까지 연간 쌀 생산량은 매년 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도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습니다. 2015년 발표한 쌀 소비 촉진 활성화 사업 계획 보고서만 봐도 그렇습니다. 쌀 가공 산업대전을 비롯해 '米남米녀 푸드 페스티벌' 등 여러 쌀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쌀 가공품에 대해 판매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사이 쌀은 다시 밥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쌀이 친해지기가 어렵다 느껴지신다면, 쌀 박물관 홈페이지(www.rice-museum.com )를 한번 방문하길 권해 드립니다. '이런 식품도 있었어?'라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쌀 가공식품이 많거든요. 블랙빈 라이스바, 끝판 떡볶이, 황진이주, 가벼워지는 칩 등 기발한 쌀 식품이 가득합니다. 먼 훗날에도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가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