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이름 지하철역이 몇개나 되는지 살펴봤다.

서울의 1~9호선에는 302개 역이 있다. 이들 역 이름 가운데 한글로 된 이름은 몇개나 될까?

302개 역 가운데 29개 역이 한글 이름이거나 나루·여울 등 한글을 포함하고 있다.

전체 역 가운데 10%에도 못미치는 9.6%만이 한글이름이다.

그러나 전체 10%에도 못미치지만 한글이름 역은 간과할 수 없는 깊은 유래를 담고 있다. 

태어난지 1년이 안되는 매를 가리켜 보라매라 하는데 이 ‘보라매’에서 따온 보라매역(7호선)은 과거 대방동에 있던 공군사관학교의 상징물 보라매에서 유래했다. 학교는 청주로 옮겼지만 역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뚝섬역(2호선)은 조선시대 싸움에 나서는 장군의 앞에 내세우는 둑기(纛旗)를 두고 제사를 지냈던 둑섬둑도에서 유래했다.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은 아니나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섬 같아서 ‘뚝섬’이 됐다고 한다.

충정로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애오개역(5호선)은 ‘고개가 아이처럼 작다’는 뜻의 ‘아이고개’가 변형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옛날 한성부에서 사대문 안의 시체는 서소문을 통해 내보냈는데 아이가 죽으면 이 고개를 넘어 묻게 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 과거 애오개 인근에는 아이 무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버티고개역(6호선)는 조선시대 치안을 맡은 군인들이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며 도둑을 쫓았는데 “번도다”(도둑이다)라고 외치던 말이 번티에서 버티로 바뀌었다는 설이 내려온다.

이외에도 고개에 성황당과 미륵당이 있던 당고개역(4호선)처럼 지역 특징을 담는 경우가 많다. 선바위역(4호선)은 개천 가운데 바위가 서 있는 모습이라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굽은다리역(5호선)은 천호동 인근 마을인 ‘당말’과 ‘벽동’을 이어주는 다리가 굽어있어 곡교리(曲橋里)라 불렸다가, 우리말로 ‘굽은 다리’로 바뀌었다.

독바위역(6호선)은 장독같이 생긴 바위산, 돌곶이역(6호선)은 석관동 주변에 검은 돌을 꿰어 놓은 것은 천장산의 모습에서 따왔다. 한강 본류에서 여의도를 휘감아 돌아 나오는 샛강에서 유래한 샛강역(9호선)도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말이 남아있는 역들도 있다.

까치울역(7호선)은 ‘까치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의 ‘작동(鵲洞)’으로 불리다 한글로 변형됐거나 ‘작다’는 의미의 우리말인 ‘아치’가 까치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들역(7호선)은 역참기지가 있었던 상계동에서 ‘말을 들에 풀어 놓고 키웠다’고 해서 ‘마들’이라 했거나, 삼밭이 많은 지역 특징을 따 순우리말 ‘마뜰’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들역(9호선)은 수양버들이 울창하고 백로가 노닐던 옛 노량진을 ‘노들’이라 부르던 데서 붙여졌다.

강이나 바닷목에서 나룻배가 서는 곳을 뜻하는 ‘나루’는 잠실나루(2호선), 여의나루(5호선), 광나루(5호선)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잠실나루는 잠원동~점말, 여의나루는 마포~여의도를 잇는 곳이었다.

한글과 한자가 섞인 지하철 역도 많다.

1985년에 개통한 3호선 연신내역의 연신내는 연서천(延曙川)의 순우리말이다. 연서천(延曙川)은 역촌동이 마을 동녘에 있는 산에 가려서 새벽(曙)이 늦다(延)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연(延)+시내<川>가 변해서 연신내가 된 것이다.

학여울역(3호선)은 옛 탄천과 양재천이 만난 대치동 인근에 백로가 자주 찾아 왔다는 특징과 물살이 세다는 뜻의 우리말 ‘여울’을 합쳐 붙였다고 한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이 지역은 ‘학탄(鶴灘)’이라 기록돼 있다. 매봉역(梅峰·3호선)은 산봉우리가 매와 닮았다고 해서, 동작역(銅雀·4호선)은 옛 지명인 ‘동재기’가 동작으로 변한데서 유래한다.

이처럼 한글이름 역은 비록 그 수는 적어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것이다.

한편 지하철 역 이름은 지명위원회 자문을 받아 서울시장이 정하는데 옛 지명을 최우선으로 반영한다. 문화재나 고유명사처럼 쓰는 공공시설 명칭이 있으면 차선으로 검토된다. (주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