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북한은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침략했다. 이 침략 전쟁으로 수백만의 인명이 살상됐으며 그 비극적 아픔이 아직도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그 시대를 겪지 않았지만 기자의 가슴에도 커다란 응어리로 남아있다.
눈을 감을 때까지 기자의 가슴에서 결코 한국전쟁의 비극적 파편은 뽑히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은 대한민국 후손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그들이 지구상에서 핵을 사용할 유일한 곳은 대한민국뿐이다. 중국으로 미국으로 핵이 향하면 그들에게 멸망만이 존재하기에 필연코 그들의 핵은 우리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없는 한반도에서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것이다.
우리의 정치경제 사회문화가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의 많은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은 핵을 매개로 결국 미군을 철수시켜 한국을 자신들의 손에 쥐락펴락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 핵이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될 때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북한이 한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켜도 북한이 핵으로 미국 본토를 위협하면 미국은 한국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북한 핵을 떠넘길 수 없다. 반드시 현세대에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북한 핵문제 해결에 두려움 없이 나서야 한다.우리의 희생으로 후손들이 이땅에서 평화를 누려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기자는 카메라 대신 총을 들 각오가 돼 있다.
평화는 두려움으로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북한 핵문제 해결에 우리는 결단코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북한 핵시설 폭격을 막기 위해 미국에 읍소하는 우스깡스러운 정치와 외교는 종식돼야 한다.
우리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북한 핵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총화가 모아질 때 비로소 북한 핵문제는 그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후손을 위해 우리가 밀알이 되지 못한다면 역사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조국이 없는 나와 우리를 생각할 수 없다. 북한 핵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래 증언이 답할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그곳에 있던 세츠코는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서 구조됐다.
당시 13세이던 그가 잔해를 필사적으로 해치고 빠져나왔을 때 건물은 화염에 휩싸였고, 그는 같은 반 친구들이 그 속에서 산채로 불타 죽는 참상을 목격했다.
올해 85세가 된 그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2017년도 노벨상 시상식에서 반핵단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을 대표해 베아트리스 핀 ICAN 사무총장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이날 연설을 통해 72년 전 그 끔찍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핵무기가 초래할 수 있는 참상과 위험성을 세계에 다시 한 번 경고했다.
그는 "나는 아직도 그날 아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서 "오전 8시 15분, 나는 창문을 통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푸른빛이 도는 흰색 섬광을 봤고, 마치 공중에 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내가 고요와 어둠 속에서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나는 무너진 건물 아래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상태였고, 같은 반 친구들의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며 그들은 "'엄마, 도와주세요. 하느님,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건드리는 것을 느꼈고, 한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남성은 "포기하지 마! 너를 꺼내줄게.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서 최대한 빨리 기어 나오렴"이라고 말했다.
세츠코는 "내가 기어 나왔을 때, 잔해는 불타고 있었다"며 "같은 반 친구 대부분은 그 건물 안에서 산채로 불에 타 죽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상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유령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발을 질질 끌며 걸어 다녔고, 괴이한 모습으로 다친 사람들은 피를 흘렸고, 불에 타거나 부어올라 있었다. 그들의 신체 일부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살과 피부는 뼈에 매달려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손에 자신의 안구를 들고 있었다. 복부가 파열돼 창자가 드러나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불에 탄 살의 악취가 가득했다"고 떠올렸다.
세츠코는 "폭탄 한 개로 내가 사랑하던 도시가 완전히 없어졌다. 주민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그들은 타버리거나, 증발하거나, 숯이 돼버렸다. 그들 중에는 내 가족과 351명의 학교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수주, 수달, 수년에 걸쳐 수천 명이 방사선 때문에 무차별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죽어 나갔고, 방사선은 지금까지도 생존자들 죽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사망한 네 살배기 조카를 언급하며 "내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핵무기로 위협받는 세상의 모든 무고한 어린이들을 상징한다"며 "매일 매 순간, 핵무기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광기를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후손들에게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안겨서는 안된다.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을 미국만 느끼고 정작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이 이기적 현실은 반드시 극복돼야 할 것이다.(주은철 기자)
이 사진으로도 원폭피해는 설명되지 못 한다.너무도 끔찍한 사진들이 무수히 많지만 차마 게재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