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그리워하는 냄새는 무엇일까?
오랫만에 생활칼럼을 써본다,
오랫동안 삶의 칼럼을 쓰지 못했다.
칼럼은 기자의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하지만 작의적이기도 해 그동안 자제했다.
그러나 한편의 칼럼을 써야할 때가 온 것 같다.
기자가 그리워하는 냄새는 무엇일까?
누런 사각형 도시락에서 어머니가 어느날 사가지고 오신 보온도시락은 어린시절 참으로 생경하면서도 설레인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그립던 시절 보온도시락을 꺼낼 때 풍겨져 나오던 그 냄새를 잊을 수 없다 따뜻한 밥의 온기와 반찬과 국이 어우려져 풍겨져 나온던 그 냄새는 지금도 아련히 그리운 냄새다.
단양 놋재고개를 넘어 구단양 어느 전방(구멍가게)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던 전방의 특유한 냄새,제천 역전의 어느 전방에서도 박하사탕과 과자 등의 냄새가 어우러져 오묘하게 풍겨져 나오던 그 냄새가 그립다.(기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단양에서 제천으로 전학을 왔다)
도담극장,아세아극장,중앙극장 세기극장 등에서도 튕겨져 나오던 그 극장 특유의 냄새도 아직 기억에 또렷하다. 지금의 복합상영관에서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제천역에서 조치원으로 향하는 완행열차의 녹색시트에서 베어나오던 그 캐캐한 냄새도 기자의 정서 한켵에 자리하고 있다. 기름발린 철도침목에서 베어나오던 검은 냄새도 열차를 기다렸던 설레임과 같이 묻어난다.
남천동과 동현동 서울고개를 넘어 제천농고에서 동중으로 향하던 비포장도로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던 고랑주 공장의 냄새,동해백주의 추억도 아련하다.제천농고 앞에 있었던 고랑주 공장, 경주의 경주법주 공장은 비록 빛은 바랬으나 아직도 존재하건만 농고앞 고랑주 공장은 주절주절 한마디 주정(酒酊)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정말 오랫동안 기자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
기자가 그리워하는 냄새의 공통점은 '가난하지만 정이 있던 시절'의 냄새다.
'가난하지만 정이 있던 시절'
기자는 그 냄새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원형질인 정(情)
그 정(情)에는 인간의 냄새가 묻어있는 것이다.
신종코로나로 인해 우리 국민 수백 수천만명이 어려움 속에 있다.
꽃가게도,사진관도,식당도,공장도,여행사도,택시기사도 관광버스기사도 대리기사도 문방구도,가방가게도 옷가게도 우리 이웃 모두가 어렵다.
이들을 위로하고 이들을 보듬어야 하는 인간의 냄새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려운 친구를,어려운 친척을 어려운 이웃을 자그만한 정성이라도 표하며 도와야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나라에서 시행하는 정책에 인간의 냄새가 없어진지 오래다 어려운 이들에게는 언감생심이며 화중지병(畵中之餠)일 뿐이다.정부의 대출 지원책은 생화(生花)가 아니라 조화(造花)일뿐이다.향기가 묻어날릴 없다.
시혜와 시책이 아닌 먼저 긍휼의 마음이 공직자가 지녀야 할 정치인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인 것이다.
오직 진정한 긍휼의 마음속에서만 인간의 냄새가 베어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은 주께 빌려드리는 것이니 다시 주께서 갚아 주시리라"
이 잠언의 가르침을 우리가 따라야 할 때가 언제이겠는가?
한국 교회와 성도가 외식(外飾)하는 믿음을 멀리하고 지금은 주님의 참다운 가르침에 충실할 때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한국 교회가 형식적인 예배보다도 지금은 주님의 참다운 가르침에 충실할 때다.사랑(의 실천)이 가장 큰 예배요 주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사실을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과 성직자들이 깨달아야 할 때가 지금인 것이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장 22절-25절 2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19:17) (주은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