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얼이 빠져 있다.
얼이 없는 민족의 미래는 결코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얼은 SOUL(영혼)과 SPIRIT(정신)의 혼합체다.
대한민국에 민족의 얼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 일환으로 조선의 여인,그 위대함에 대해 알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 추방 주간이다.여성폭력 추방주간은 여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 여성폭력 방지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간으로 매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운영되고 있다.제천시와 제천시의회도‘여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아 여성폭력 추방주간 알리기’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다.여성주간을 맞이하여 조선 여인 그 위대함에 대한 특집 칼럼을 게재한다.
실절(失節)이란 절개를 지키지 못함을 이르는 말인데 병자호란 직후에는 정절을 잃은 조선의 여인을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었다.
이 실절(失節)은 병자호란 직후 조선 국정의 주요 화두였다.
병자호란 때 포로로 끌려간 조선 여인에 대한 문제는 당시 큰 사회적 화두였다.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힌 여인과 살 수 없다며,이혼을 요구하는 상소가 이어졌다.그러나 인조는 이혼을 불허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게 큰 이유였다.
그러나 사대부 가정에서는 이혼을 금하는 국법을 어기고 대부분 이혼을 택했다. 말이 이혼이지 내친거나 다름없다.그냥 버린 것이다.이것은 씻을 수 없는 조선의 슬픈 역사다.포로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조선 여인들을 돈을 주고 조선으로 데려오는 속환제도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그리운 고국땅을 밟았으나 실절(失節)한 여인들로 낙인찍어 내쳤던 것이다.
인조 15년인 1637년 음력 1월 30일,조선의 국왕 인조는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이른바 삼배구고두례를 올리면서 병자호란은 끝났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은 근본적으로 다르나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역사학자가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왜놈들은 임진왜란 때 약탈을 일삼으며, 닥치는대로 조선의 여인들을 겁탈했지만 병자호란 때는 달랐다.이들이 비록 여진족과 만주족의 후예라고는 하나 중국 천하 통일을 꿈꾸는 세력으로 병자호란 때는 민간인 학살,부녀자 겁탈 등 임진왜란 때와 같은 야만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
몽골은 쌍성총관부를 두고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두며 사실상 고려와 조선을 식민통치했지만 청은 삼배구두례를 통해 물러갔다.
즉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입한 청군에 의한 조선 여인의 실절(失節)은 거의 미비했다.청 태종 홍타이지는 자신의 대관식(황제 즉위식)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고 강제로 참석한 임시 사신마저도 머리를 숙이지 않자 조선을 응징하기 위해 침략하면서도 민간인 학살과 부녀자 겁탈 등의 야만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이들은 전투다운 전투없이 오직 속도전으로 압록강을 건넌지 불과 수일만에 한양에 도달한 것이다.
이들은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간 국왕과 신료들을 응징하지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병자호란 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데려와 결국 강화도를 점령했다. 강화도로 피난갈 겨를도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달리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많은 조정 신료들의 가족들이 강화도 피난길에 올랐는데, 강화도가 청군에 의해 점령되면서 인조도 남한산성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에 이른 것이다.강화도 점령 당시 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자신의 몸이 더렵혀질 것을 우려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지어 동굴로 숨어든 조선의 여인들을 붙잡기 위해 동굴에 불을 피웠지만 나오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이러한 조선 여인들의 절개는 청군들에게 너무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조선의 여인들은 중국 여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청군들이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인조의 항복 후 중국 심양으로 끌려가는 조선 여인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능케 했다.
1637년 병자호란 때 포로로 끌려간 조선의 여인들은 나이와 인물 그리고 출신성분에 따라 노비로 팔려가거나 후처로 들어가거나 왕실로 들어가거나 하는 선택을 받았다.이 과정에서 수청을 거부한 조선여인들 부지기수가 굶어죽는 아사의 길을 택하며,끝까지 절개를 잃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게 외면해왔다.
강압적인 북한사회에서 탈북자가 가능한 지금처럼 당시에도 일부는 탈출이 가능했는데,추운 겨울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향하다 추위와 맹수에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스러져갔다. 이것은 민족의 비극이자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슬픈 역사다.
남한산성 같은 소설과 영화는 병자호란의 한 맺힌 역사에 비하면 조족지혈 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들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도착한 여인들을 당시 조선은 어떻게 대했는가? 청국이 탈출한 조선 포로들에 대해 강제 송환을 요구하자 수많은 탈출 조선인들이 다시 청국으로 끌려가는 생뼈를 깍는 고통이 가해지지 않았던가!
머나먼 중국 땅에서 탈출한 조선의 여인들 대부분은 실제로는 실절하지 않았다.
실절한 여인들은 거의 대부분 목숨을 끊었거나 후처로 노비로 생명을 이어갔다.
심양을 탈출해 그 머나먼 길을 걸어서 조선에 도착한 조선의 여인들 대부분은 곧은 절개를 지킨 참다운 조선의 여인들이었다.
이들을 조선은 내쳤다.
사대부집 거의 모두가 중국에서 돌아온 여인들을 버리고 이혼을 선택했다.조선으로 돌아와 그 억울함에 자결한 여인들도 부지기수였으니 한 맺힌 조선의 역사와 조선 여인의 비극적 삶을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되며,외면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흔히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욕하는 화냥년을 병자호란 때 중국에서 돌아온 환향녀에서 비롯된 것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정말로 역사을 모르는 무식한 소치에서 나온 말이며,조선 여인에 대한 후안무치한 발언이기에 절대 삼가해야 한다.
이것은 얼빠진 기득권층이 후대에서 유언비어식으로 만들어낸 말이다.이것을 읊조리는 것 자체가 조선 사대부의 위선과 다름없는 짓이다.
중국에서 돌아온 조선 여인들은 결코 문란하지도 실절하지도 않은 곧은 절개의 여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기자가 쓰는 이 글이 억울하게 스러져간 조선의 여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더 바랄 게 없다.
피치 못해 후처의 길로 가거나 왕실로 들어간 여인들은 속환에서 예외이나 노비로 팔려간 여인들은 조선에서 돈을 모아 이들을 데려오는 속환으로 인해 많은 여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선은 이들을 4대문 안으로 들이지 않고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들어오게 했는데 이것 또한 지레짐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비로 팔려간 조선 여인들은 주인의 수청을 거부하면 음식을 주지 않았는데 이는 스스로 수청을 택하게 함이었다.
그래서 많은 여인들이 굶어 죽는 길을 택했으며,일부는 끝끝내 수청을 거부하고 살아남은 여인들이 많았다.
결국 돈을 주고 데려온 속환 여인들 가운데 정절을 잃지 않은 여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만주족의 전통인 변발을 강요했는데 조선과 명나라에서 유행한 상투는 공자의 가르침인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상징이기도 했기에 변발에 대한 극심한 저항이 있었고 이것을 끝까지 거부한 당시 중국 고대도시 양주는 청나라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역사에 남을 살육의 아픔을 겪었다.20세기에 발생한 킬링필드보다 더한 도륙이 중국 유서깊은 고대도시 양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양수초란 인물이 학살의 10일간을 기록한 책이 양주십일기다.
그가 청군을 피해 어느 집 다락으로 가까스로 몸을 숨기며 청군이 나눈 대화를 엿듣고 기록으로 남겼는데,양주정벌에 나섰던 청군 가운데 일부는 병자호란 때 조선에 침입한 병사들이었다.양주정벌의 총책임자 아이신기오로 도도 또한 병자호란 때 조선에 침입한 인물이다.
왕수초가 듣고 기록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끌려온 한족 여인들이 청군 병사에 아양을 떨며 이들이 획득한 재물에 관심을 보이자,우리가 고려를 정복할 때 고려 부녀자 수만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몸을 내맡기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찌하여 수치심을 모르는 게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이게 바로 너희들이 이런 난리를 겪는 이유다라고 말한 것이 기록돼 있다.이때 고려는 만주족이 조선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 여인 수만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몸을 내맡기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청군의 증언이 양주십일기에 생생하게 기록된 것이다.
조선 여인들!
그들 가운데 실절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청군이 말한 이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비록 오랑캐라고 비하한 만주족은 그래도 중국의 전통을 따라 여인들이 스스로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겁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단에 산해진미에 갖가지 진귀한 보물로 유혹을 했지만 조선에서 이미 정혼을을 약속하거나 혼인한 여인들은 결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추위와 배고픔과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조선의 여인들은 조선의 얼을 잃지 않았다.
이것은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일로 조선의 여인들이 얼마나 위대한 여인들이었는 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이란 책에는 충과 의를 외친 사대부들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신은 단 한 명도 없고 오직 조선의 여인들만이 곧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던졌으니 이러한 죽음은 영광된 것이란 기록이 있다.
우리는 조선 여인들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그 난리를 겪으면서도 조선의 얼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그러한 역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면서 나라를 잃지 않고 살아오고 있는데는 조선 여인들의 희생과 절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조선의 여인들은 현대에서는 어머니로 21C에는 할머니로 칭해지며,자식들과 손자손녀들에게 끊임없는 헌신을 베풀며,희생과 고난을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선 여인에 대해 오랑캐국이라는 불리는 청국은 존경을 표했는데 모국인 조선은 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역사적 반성이 뒤따라야 하며 홍제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홍제천이 몸을 더립힌 실절한 여인들이 몸을 씻는 장소로 둔갑시킨 것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사대부들이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홍제천에서 몸을 씻은 여인들은 도성으로 입성해도 죄를 묻지 않겠다니 이것이야 말로 관대함을 빙자한 비겁함이 아니겠는가!
홍제천은 조선의 얼을 지키며,정절을 지킨 여인들이 목욕한 옥수로 정절수로 다시 탄생돼야 한다.주화론의 거두 최명길마저 조선 여인들이 몸을 더럽힌 증좌가 어디에 있느냐고 했지만 대부분의 신료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으로 위대한 조선 여인의 얼을 짓밟은 것이다.물론 청군들과 주인들에게 실절한 여인들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조선 여인들은 결코 실절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가짜뉴스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저널리즘이 우리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하다.
일부는 본류와 다를 수 있겠지만 큰 줄기는 비록 병자호란으로 인해 포로로 끌려갔지만 대부분 조선 여인들은 실절하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인 것이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절개는 조선을 관통한 조선 여인들의 얼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얼이 사라졌다.그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 여인들의 절개에는 성삼문 박팽년 유성원 같은 참다운 조선의 선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믿고 따를 지아비의 고결함과 실천적 행동이 있었기에 조선의 얼은 유지될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모리배들이 천지에 가득하다.그러니 어찌 지금의 여인들에게 조선의 여인들 같은 절개를 바라겠는가! 먼저 남성들이 본이 되지 않는 한 얼을 되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얼빠진 놈이란 말은 욕인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얼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희롱이 천지에 진동한다.소수의 여성이 근무하거나 여성 1인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희롱은 얼빠진 오늘 대한민국의 부인할 수 없는 자화상이다.
인간은 돈으로만 밥으로만 육체로만 살 수 없는 존재다.
이때 인간은 얼이 살아있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얼'은 대한민국 5천년 역사를 관통하는 빛의 단어다.
반만년 역사 동안 이땅에 이어져온 얼이 지금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며,두려운 일이다.
조선 여인들이 목숨을 던지며 지켰던 조선의 얼이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멸종돼 가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아파하지도 않는 이 무딘 역사적 감각이 두렵고 아플뿐이다.
기자가 말하고 싶은 얼은 비겁함을 멀리하고 의로움을 지키려는 참다운 정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웃과 민족의 슬픔을 진정으로 같아 아파하는 마음,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 등 살아 있는 영혼을 말한다.
조선의얼! 대한민국의 얼이 살아나서 약동하는 세상을 우리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주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