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분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詩作 메모
중에서
기자는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시집 뒷편에
자리한 시작 메모를 사랑한다. 그의 시 '거리에서' '물속의 사막' 등도 좋아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분분
공중에 흩어졌다.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기형도 시인의 시대적 고뇌가 기자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작년 한해 기자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그리며 밤을 지샜다.60-70년대 기자는 제천.단양.매포에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때 서울 종로거리는 어떠했는지... 명동거리는....무교동
거리는......소공로거리는......퇴계로거리는.......60-70년대 서울의 에네르기를 가슴에 담고 싶었다.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태동기인 그 시절....가난하지만
정이 있었고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을 만지고 싶었지만 만질 수가 없어 밤마다 60년-70년대 흔적을 찾아
헤맸다.
밤새 60년대 영화음악 '부베의 여인'을 들었고 '쉘부르
우산'도 들었다.
고국 불가리아를 떠나야 했던 여가수
이제는 80이 넘었을 그 당시 청년들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명동거리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부베의 여인'을 어떠한 마음으로 들었을지 긍금했다.
대한민국 최소 100년의 먹거리는 지난 60-70년대 그
기반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기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기자는 기사만 쓰는 게 아니다.하루에도 수많은 기사를
읽고 방송의 뉴스도 본다.
그러나 정말 시대가 너무 가벼워,지난 60-70년대와
80-90년대 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언론으로부터 마주하며 절망하게 된다.
시민들이 지난 총선에서 이미 심판했으며,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인물을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인 국정원장 자리에 임명해도 중앙언론에서 제대로된 날카로운 비판기사 하나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군다.
국정원은 국가의 기밀을 다루는 중차대한 자리여서 그
수장은 가벼운 사람을 앉혀서는 안된다.정치인 가운데 가볍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인을 그 자리에 앉힌 오만은 현정권이 그들만의 정권임을
실감케 한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고성 화암사를 빈손으로 찾아갔다는 게
기자는 믿기지가 않는다.독재정권 때도 정치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민을 위하고 대의정치를 위해 양보와 타협속에서 둘이
손잡고 국회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열며,국회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어야 했거늘,여당은 그런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그럼에도
대한민국 언론은 여당에 죽비를 들지 않았다.
가진자가 양보하고 베풀어야지 없는자가 무엇을 베풀고
양보할 수 있겠는가?
사찰을 떠도는 야당 원내대표를 다독여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정치력을 마땅히 여당 원내대표가 보야줘야 했거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성 화암사를 방문해 빈손으로 돌아온 여당 원내대표를 한국언론은 꾸짖지
못했다.
이 가벼운 시대에서 기자가 기형도 시인의 시작메모를
떠올리는 건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통로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4.15 총선에서 수천만명이 투표를 했다.4월말에서 5월초로 이어지는 황금연휴에는 또 수천만명이 이동을 했다.
또 지금은 대천해수욕장도 문을 열었고 해운대해수욕장도
문을 열었다.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서울에서도 하루에 수백만명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신종코로나를 조심하고 잘 대비해야겠지만 언론은 냉철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신종코로나는 이미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치사율이 낮고 전염율이
낮다.
5천만 인구중에서 신규환자 30-50명을 언론이 매일
호들갑 떨고 중심 뉴스로 보도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적어도 하루 백여명의 신규환자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보도
비중을 마땅히 줄여야 할 것이다.언론도 정부도 국민을 통제의 수단으로 여겨선 안된다.
자신들이 마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걱정하며 지키는
수호신처럼 행동하며,5천만 인구 가운데 1% 아니 0.1% 아니 0.01% 아니 0.001%도 안되는 신규 감염자수를 매일
중계방송하며,자영업자와 서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도 어떤 언론이나 양심있는 기자 하나 나서지 않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암담한
현실이다.
공포를 조성하는 올 가을 신종코로나 대유행설,감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N차 감염이라는 표현도 다소 과장된 것이나 이를 지적하는 언론은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무증상 감염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현실에선 전염병
확산의 도화선이 될 수 없음은 이미 여러차례 입증되었다. 제천을 방문한 감염자는 제천 접촉자 누구에도 코로나를 전염시키지 않았으며 심지어
가족에게까지도 전염시키지 않았다.
코로나 증상이 발생하면 당연히 전염율도 높지만 증상이
발생한 환자는 스스로 검진을 받고 격리되기에 기하급수적으로 (환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N차 감염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들다.언론이 이제는 선정적 과잉보도 태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온갖 매체들이 매일 '코로나'로 도배질하다 보니 일반 시민들도 필요 이상으로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 점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코로나19는 '걸리면 죽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염병 공포는 2000년대 들어 끊임없이 이어졌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으로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난리를 쳤지만, 신종플루 때 263명, 메르스 때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 전부다. 금일(6일)까지 코로나 사망자는
283명이다.
한해 독감 사망자 2천명에 비할 바가 아니다.매년
2000여 명의 사망자를 내는 독감 시즌엔 나몰라라 하는 언론들이 유독 '신종코로나'에는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쳇말로 '뉴스 장사'가 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제는 언론이 상업주의와
시청율 경쟁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일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도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만이라도 깨어 진실을
말해야겠지만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그 날씨를 견디지 못해 글을 쓰지 못했다"는 기형도 시인의 독백이 가슴을 때린다.기자의 마음이 지금
그렇다.
기자의 글이,기자가
전하고자 하는 진실이 거대한 강에 쏟아붓는 한삽의 모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절망감과 회의감이 찾아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처럼 쓸쓸한
밤눈(글,진실,시)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는 시인의 위로를 위안삼아 기자만이라도 깨어 진실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기사화되지 못하고 흩날렸던 언어들(이를테면 제천의
X파일 등)을 모아 '기자의 비망록'이란 타이틀로 가을이나 내년초에 찾아뵙고자 한다.그때까지 조금은
기자가 하고 싶은 말들이 형식을 찾지 못한 채 공중에 흩어지더라도 용서를 간청드린다. (朱恩澈 編輯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