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뉴스저널=주은철 기자) 어느덧 여름은 가고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조국(祖國)은 20일이 넘도록 조국(曺國) 사태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는 좌파와 진보의 삶에 어울리지 않게 권력과 부를 좇아 살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의와 인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며 학문 및 사회활동을 펼쳐 왔고, 민정수석으로서는 권력기관 개혁에 전념해 왔으나,지금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반성하며 준엄하게 되돌아보는 상황을 맞이했다"며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깊은 회한을 드러냈다.
기자가 휴가기간 만난 지인들도 조국을 이야기 하고 있었고,지인들과 정을 나누는 술자리에서도 손님들은 조국(祖國)대신 조국(曺國)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조국을 '강남좌파'로 칭하며 그의 삶이 '강남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한 점을 아쉬워 했다.
그러나 그는 강남에서 보기드물게 좌파의 길을 걸어 희소성 가치를 높인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부와 명예를 좇기 위해 정도(正道)가 무시되었던 삶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을 맞아 기자는 한편의 시를 전하고자 한다.
이 시를 통해 우리의 삶이 결코 돈과 권력에 예속돼서는 안된다는 울림이 전해지기를 바래본다.
이태백 두보와 함께 당대(唐代)의 시선(詩仙)으로 불렸던 백거이(白居易) 시인이 아내에게 바친 노래다.
白居易(백거이)
"아내에게(贈內-증내)"
生爲同室親(생위동실친)
死爲同穴塵(사위동혈진)
他人尙想勉(타인상상면)
而況我與君(이황아여군)
黔婁固窮士(검루고궁사)
妻賢忘其貧(처현망기빈)
沂缺一農夫(기결일농부)
妻敬儼如賓(처경엄여빈)
陶潛不營生(도잠불영생)
翟氏自餐薪(적씨자찬신)
梁鴻不肯仕(양홍불긍사)
孟光甘布裙(맹광감포군)
君雖不讀書(군수불독서)
此事耳亦聞(차사이역문)
至此千載後(지차천재후)
傳是何如人(전시하여인)
살아서는 한 방에서 사랑하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리라
다른 사람도 부부의 도를 지키는데
하물며 그대와 나는 더 할 나위 있겠는가
검루는 가난한 선비였으나
현명한 처는 가난을 잊었고
기결은 한낱 농부였으되
처는 그를 귀빈처럼 공경했고
도연명은 생계를 못 꾸렸지만
부인 적씨는 스스로 살림 꾸려나갔네
양흥은 벼슬살이 물리쳤으나
그의 처 맹광은 베옷에 만족했지
그대 비록 책은 읽지 못했어도
귀로는 들어 알고 있으리라
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들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人生未死間(인생미사간)
不能忘其身(불능망기신)
所須者衣食(소수자의식)
不過飽與溫(불과포여온)
蔬食足充饑(소식족충기)
何必膏梁珍(하필고량진)
繒絮足禦寒(증서족어한)
何必錦繡文(하필금수문)
君家有貽訓(군가유이훈)
淸白遺子孫(청백유자손)
我亦貞苦士(아역정고사)
與君新結婚(여군신결혼)
庶保貧與素(서보빈여소)
偕老同欣欣(해로동흔흔)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있는 동안은
육신의 존재를 잊을 수는 없어
먹고 몸을 가리기 위한다지만
배를 채우고 몸 따스함에 지나지 않는다
굶주림은 나물로 때우면 그만이지
어찌 기름진 음식이 필요하며
거친 솜옷으로 추위만 막으면 됐지
어이해 비단 옷에 무늬가 필요하겠는가
그대 집에 내려오는 가르침에도
청렴결백을 자손에게 전하라 하였으리
나 또한 고지식한 선비로서
당신과 혼인한 이상에는
모쪼록 가난과 소박함을 지켜
기쁜 마음으로 백년해로 하리라
이 시에서 백거이가 소개한 여러 인물 가운데 검루를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전한시대(前漢時代)에 지은 '열녀전'(列女傳)이란 책에 노나라 '검루'라는 사람이 나온다.
'검루'(黔婁)는 소위 지사형의 인물로,노나라 임금이 그의 덕망을 흠모하여,재상으로 모시겠다고 하여도 사양하고는 청빈한 삶을 살다 죽었다.
죽고 나서 검루의 친구 중자가 문상을 가서 보았더니 얼마나 가난했던지 시신을 덮은 이불이 작아서 발이 다 보였다.
중자는 검루의 부인에게 말했다.
“홑이불을 비딱하게(대각선으로) 덮어 보시죠.”
그러자 검루의 부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비딱하게 덮어서 넉넉한 것은 차라리 바르게 덮어서 모자라는 것만 못합니다.선생께서는 살았을 때 굽은 것을 싫어하여 이처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생전에 바르지 않은 짓을 하지 않았거늘 죽어서 바르지 않는 이불을 덮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선생의 뜻이 아닙니다.”
검루 부인의 고고함이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검루 부인이 범속한 여자였다면, 문상 간 남편의 친구 앞에서 남편 푸념이나 늘어놓았으리라.
그랬다면 남편의 평생의 지조도 다 묻혀버리고 말았으리.
검루 부인의 한 마디는 천금보다 더 귀한 것이며,검루의 청빈한 삶을 역사속에서 살아 숨쉬게 한다.
가을의 초입을 맞아 선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울림을 준다.
기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현시대에서도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살 수는 없어도 이러한 정신은 간직되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정신이 간직된 삶은 소과(小過)는 범할 수 있어도 결코 대과(大過)를 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백거이 선생의 대주(對酒)라는 시 한편를 더 전한다. 이 시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아주 사랑하고 아꼈던 시로 유명하다.짧지만 울림과 여운이 있어 가을의 초입에 어울린다.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 불꽃처럼 찰라의 삶을 살거늘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풍족하면 풍족한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즐겁게 받아들이며 살자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찰나같이 짧은 인생) 미소의 삶을 살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천치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에 위치한 명산(名山) 여산(廬山)에 세워진 소박한 백거이 초당

명산 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