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뉴스저널은 스토리텔링의 황무지인 제천을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로 만들기 위해 지역언론으로써 역사적인 첫 걸음을 떼고자 한다.
먼저 제1탄으로 제천의 쌍비경 관란정(觀瀾亭)의 애절한 스토리텔링을 고증과 사실에 기초해 현대적 시각으로 재탄생 시키고자 한다.
편의상 제1.2.3부로 나누어 게재한다.
<제1부 - 임을 향한 忠詩>
관란정(觀瀾亭)은 제천시민들께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데 그만큼 제천이 인문학과 스토리텔링의 불모지란 반증이기도 해 마음이 아린다
먼저 관란정이 쌍비경인 이유는 관란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감춰진 비경(秘境)이다. 관란정(觀瀾亭)은 부여의 낙화암보다 영월 낙화함보다 아름다운 곳임에도 숨겨져 있다.(영월 낙화암은 별도로 소개하고자 한다)
궂이 아름다운 순서를 매기면 제천 낙화암,영월 낙화암,부여 낙화암 순일 것이다.
비경(秘境) 순서는 그렇지만 스토리텔링으로 부여 낙화(話)암은 연간 수백만의 인파가 밀려들지만 제천 낙화암과 영월 낙화암은 화(話)가 없는 낙암(落岩)으로만 존재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부여 낙화암과 영월 낙화암은 실제로 궁녀들과 절개를 지키려는 춘향과 같은 기생 경춘이 떨어져 산화한 곳이다.모두 여성들이 떨어진 곳이다.
그에 반해 제천 관란정 낙화암은 선비의 절절한 마음 그리움이 떨어진 곳이다.
몸은 죽을 수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수백번 관란정 낙화암에서 산화했던 곳이다.
바로 사육신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충절을 상징하는 생육신 원호 선생의 애잔한 사연이 깃든 곳이 관란정인 것이다.
그래서 제천 관란정은 비경(秘境)을 품은 곳이지만 속살은 비경(悲境)인 것이다.
관란정은 서강을 굽어보는 낙화암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조선시대 대표적 충신인 생육신의 한사람인 원호 선생의 애절한 슬픔이 서려있는 곳으로써 그는 임을 그렸지만 유학자로서 "우리 몸은 털 하나라도 부모에게 받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함부로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로 인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기에 수없이 마음만이 절절히 낙화했던 곳이다.
관란정은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산 14-2번지에 위치해 있다.
관란은 조선시대 생육신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원호 선생의 호다.
관란(觀瀾)는 볼관자 물결란자로 물결을 바라본다란 뜻이다.이 물결이란 란(瀾)의 의미는 역사의 파란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관란은 조선초기 역사의 파란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원호는 세종 5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계유정난으로 육진을 개척한 대호(大虎) 김종서 장군과 영의정 황보인이 죽자 벼슬을 저버리고 원주로 낙향한다.
이어 그는 단종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영월로 유배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원주를 떠나 제천 송학면의 현 관란정에 초막을 짓고 조석으로 청령포가 있는 동쪽을 향해 배례(拜禮)를 올리며 단종을 문안했다.
그는 관란이란 호에 어울리게 깍아지르는 낙화암 절벽 아래로 흐르는 서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애절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간밤에 울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내여라 이제야 생각하니 임이 울어 보내도다 저 물이 거슬러 흐르고저 나도 울어 예리라."
해석- 간밤에 (그렇게) 울던 여울이 (아침이 와도) 슬피 울며 흘러가는 가는 도다.
생각해보니 (청령포에 계신) 임의 울음이로 구나
저 물이 임께 거슬러 흐르도록 내 마음도 따라 울어 예리라......
관란정이 비경(悲境)인 이유는 충분하다.
관란정의 스토리텔링은 애절하다.(제1부 終)
사진-푸르른 서강을 굽어보는 제천 관란정 낙화암의 형언할 수 없는 위용 전국 낙화암 중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 - 현재 아이고바위라 불리고 있지만 이보다는 원호 선생의 그리움이 산화한 제천 낙화암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제2부 - 서강 백리길 >
관란정에서 청령포까지 서강의 물길은 백리길에 이른다고 한다.
원호는 단종을 연모하며 나뭇잎에 시를 써서 서강에 띄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단종을 위해 산나물과 채소 등도 박에 담아 띄워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고전시가와 구비문학에 조예가 깊은 문학박사 세명대 이창식(李昌植) 교수(한국어문학과)는 관란정 아래 서강에서 작은배 10척를 띄워보내는 실험을 통해 6척이 청령포에 도달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처럼 관란정과 서강의 스토리텔링은 도도(滔滔)하다.
이 관란정 바로 위에서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수돼 서강을 만들어 굽이쳐 청풍호로 흘러드는 것이다.
관란정을 출발한 서강은 서면(현 한반도면) 옹정리와 화병교를 지나 들골을 흐르며 들골교를 지나 연당과 연당교를 거쳐 문개실마을 앞 잠수교를 지나 선돌과 방절리를 품에 안고 임 계신 청령포로 흘러든다.
관란정을 출발한 서강은 청령포에 이르기까지 장장 백리길을 흐르며 수많은 비경을 토해낸다.
제천뉴스저널은 관란정을 비롯한 제천의 명소에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절절한 시대적 소명을 가슴 깊게 간직하고 있다.
기자가 관란정에 도착한 날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도 감사하게 80이 넘으신 노인 한분을 만났다.
이분은 공교롭게도 조선의 충신 원호와 고려의 충신 원천석의 후손인 원주 원씨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관란정 아래 서강에서 멱감고 놀아 관란정에 관해 누구보다도 깊은 사연을 간직한 분이었다.
세명대 이창식 교수의 조각배 실험도 이분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또한 이곳 서강은 제천시민들의 젖줄이기도 하다.
바로 관란정 아래 서강을 원수(原水)로 하는 제천 장곡취수장이 지척에 있다.
제천시민의 생명수가 바로 관란정 아래 굽이쳐 흐르는 서강인 것이다.
내천(川)자를 쓰는 제천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초까지 의천(義川)이라 불렸다.
제천의 천(川)은 의림지에서 흘러 내리는 의천(義川)과 이곳 서강에서 수도관을 타고 제천으로 흐르는 원호의 의천(義川),그리고 자양서사에서 제천을 휘감고 돌았던 애국정신의 의천(義川) 등 三義川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진정한 제천의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지금 관란정 아래 서강은 습지로 보호받고 있다.
그런데 관란정 아래 서강습지는 원래는 명사십리(明沙十里) 같은 고운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5년 경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을 건설하면서 고운 서강의 강모래을 마구 퍼갔다고 했다.
원 선생의 기억은 정확했다 아세아시멘트 건립시기를 찾아보니 정확히 1965년 4월 1일에 제천공장 건설 기공식이 있었다.
고운 강모래는 아세아시멘트뿐만 아니라 아세아시멘트보다 먼저 건설된 쌍용시멘트에서도 퍼갔다고 했다.
역시 확인해보니 기억은 정확했다.1962년 9월에 쌍용시멘트 영월공장 기공식이 있었다.
원영상 선생은 제천영월의 거의 모든 시멘트 공장이 관란정 아래 서강의 강모래를 사용해 지어졌다고 증언했다.
결국 강모래는 바닥이 났고 강모래 자리에 황토흙이 물결에 실려와 뻘을 만들고 그 위에 억새풀이 등이 자라면서 백사장은 없어지고 지금의 습지가 되었다고 한다.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에 이르기까지 멱을 감고 천렵하며 놀았던 서강에 대한 애잔한 추억을 간직한 80대의 원영상 선생을 만난건 기자에겐 행운을 떠나 숙명같은 것이란 생각이 온몸을 휘감고 돌았다.
선생을 만나 관란정(觀瀾亭)의 스토리텔링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기자도 약 40년 전에 이곳 관란정 아래 서강에서 멱을 감고 놀았던 유년 시절의 애툿한 추억이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70년대 제천 서부동에서 출발해 관란정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이었다.시내버스를 이용하고도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렸하다.
관란정에서 우연히 만난 80대의 노인분과 깊은 교감이 가능했던 것도 기자의 아련한 유년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관란정은 그 옛날 쌍용초교, 입석초교, 토교초교, 신천중학교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이용되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의 애잔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그렇기에 스토리텔링의 옷만 잘 입힌다면 의림지와 함께 제천의 명소가 될 것이다.(제2부 終)
사진-제천 관란정의 깊은 멋

<제3부-잊혀진 관란정 >
원호는 단종이 승하하자 영월 청령포 인근에 움막을 짓고 3년상을 치뤘다고 한다.
헌종 때에 이르러 원호의 충의를 길이 앙모하기 위하여 원호 선생이 초막을 짓고 단종을 배례하던 자리에 정자를 세우고 원호의 호를 따 관란정이라 했다.
관란정은 현종 11년인 1845년에 중수하고 1941년에 개축하였고, 1970년과 1987년 그리고 2013년에 다시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특히 2014년도에는 이곳 관란정에서 전국 한시백일장이 열리는 뜻 깊은 역사도 있었다.
이곳 관란정에는 원호선생을 기리는 유허비도 있는데 유허비는 영·정조 때 대학자 홍양호(洪良浩, 1724∼1802) 대제학이 글을써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제천의 관란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강에 녹아 지금도 흐르고 있는 살아 꿈틀대는 유적지다.
유허비 및 관란정은 1994년 6월 24일 충북기념물 제92호로 지정됐다. 현재 제천에는 관란정,박약재,자양영당 등 5개소의 충청북도 지정 기념물이 있다.
이곳 관란정은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새해에는 일츨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관란정은 송학 출신으로 제4대 5대 6대 제천시의원을 지낸 최종섭 전 의장이 관심을 갖고 2007년에 주차장 조성공사를 시작으로 2011년 탐방로 정비공사까지 마무리 하였으나 현재는 관심을 갖는 이 없어 예산 한푼 배정없이 외롭게 방치돼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원호 선생의 시비 건립과 진입로 정비,탐방로 안전 점검과 노후 관광안내판 교체, 스토리텔링 안내판 설치 등 해야할 일이 많으며 언론과 SNS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할 것이다.
제천뉴스저널은 제천의 정치가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화되면 제천시와 제천시 의회 그리고 제천시노인회와 제천시문화원,세명대 지역문화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제천시에 거주하는 80대 이상의 노인분들을 제천시청 대회의실로 초청해 오찬을 베풀고 이들이 전하는 제천의 숨은 역사를 구술하고 기록하고 녹취하는 일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히는 제천 스토리틸링의 원년을 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각 유적지와 명승지의 안내판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포털사이트와 SNS를 통해 새롭게 정비된 스토리텔링의 제천을 알림으로써 제천의 시격(市格)을 높이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제천을 만드는데 지역언론으로써의 소임을 다하고 싶다.
관란정,의림지.점말동굴,배론성지,자양서사,남산,박약재, 정방사 등에 고증에 기초하는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혀 맨몸뚱아리의 외로운 제천에 정과 온기를 불어 넣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 한다.
또한 제천에 의병대릉을 조성해 경주같은 현장학습과 수학여행의 중심지로 만들어 제천을 부강케 하며, 의림지와 점말동굴까지 이어지는 모노레일을 통해 제천관광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막아내 제천을 부요한 도시로 만드는데도 관심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천뉴스저널은 지역언론으로써 시민들의 삶이 풍요해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천혜의 절경 청풍호관광단지와 함께 제천을 스토리텔링의 옥답으로 만드는데 시와 학계,언론계와 정치권이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그 지역 인문학의 수준과 문화 역량의 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서강에 서걱이는 충신 원호 선생의 영혼을 기려보자.
서강과 관란정의 주요 화보는 그래픽뉴스로 전한다.(朱恩澈 編輯局長)
사진-관란정 아래 서강을 바라보는 청송이 원호 선생의 마음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