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뉴스저널은 미디어비평 두번째로 순서로 지난 13일 'KBS 시사기획 창'에서 보도한 우덕순 지사 밀정 보도에 관한 문제점을 2회에 결쳐 비평기사로 보도한다.(편집자 주)
지난 16일 제천문화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묵향에 혼을 담다'전시회에서 일본인 여성들은 독립운동가 49인의 친필 이름 앞에 잔을 올리며 일본 침탈에 대한 사죄의 예를 표했다.
이 독립운동가 49인의 이름은 백범 김구,의암 유인석,도산 안창호,단재 신채호,매헌 윤봉길,의당 박세화 등 그야말로 이름만 들어도 존경과 경외심이 스며드는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쟁쟁한 독립운동가들 이름에는 지난 13일 KBS1 ‘시사기획 창’에서 '밀정'이라고 단죄한 제천 출신 우덕순 지사의 이름도 있었다.
'confusion'
기자에게는 'confusion'(혼란,혼동,논란,현기증) 그 자체였다.
그 혼란과 현기증을 추스리고,기자는 먼저 KBS의 '밀정'보도가 엉성하고 부실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만약 우덕순 지사의 후손들이 살아있어 KBS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면,KBS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어줄 수도 있었을 사안이라 판단된다.
'밀정'이란 단죄는 일종의 '판결'이나 마찬가지다.
이 낙인의 판결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반드시 '명확성'을 지녀야 한다.재판에 있어 유죄판결의 대전제인 구체성과 명확성이 '밀정'이란 단죄와 낙인에도 반드시 준용되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소신이다.KBS의 밀정보도는 단순한 의혹제기 보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KBS의 우덕순 밀정보도는 명확성에 한계를 노정한 보도였다.
어떻게 단순한 의혹제기도 아니고,(그렇게 간단하게) 공영방송이 우덕순 애국지사를 밀정이라고 단죄했을까?
KBS가 방송에서 '밀정'으로 단죄한 근거가 되는기밀문서 등을 포함한 여러 정황증거에 대한 맹점을 논하기 전에 기자는 반드시 한가지를 짚고자 한다.
KBS는 '밀정'이란 단어가 지니는 국민적 정서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우덕순=밀정이란 등식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합리화 되려면 안중근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이 밀정 보고서로 일제에 전달됐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일반적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밀정'인 것이다.
KBS는 김좌진 장군과 함께 1920년 청산리전투를 수행한 독립군 대원으로서 김좌진의 장군의 막빈(=비서) 역할을 수행했던 최측근 이정을 밀정이라 소개하며,이정이 △독립군 간부들의 용모와 특징 △김좌진과 김원봉의 향후 합동 의거 계획 △군자금 모금 상황 등에 대해 매우 세세하게 일제 측에 밀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럴 경우는 국민정서에 견주어도 밀정에 해당되며, 문서 기록시기와 문서 작성자 등의 진위 여부만 가리면 된다.
그런데 우덕순은 이러한 구체성이 결여된 채 밀정으로 보도됐다.
그의 밀정 행적에 있어,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밀정행위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기자는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이정'과 같은 '밀정'의 반열에 우덕순 지사를 같이 올렸다는 것 자체가 이번 밀정보도의 부실함을 나타내는 반증이라 기자는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KBS는 지난 8개월간 일본·중국 기밀문서 5만 장을 분석해 밀정 혐의자 895명 실명을 공개했다고 밝혔는데,이러한 작업이 다시 검증의 단계를 거쳐 '명확성'이 확보된 뒤에 방송으로 나가려면,최소 3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며,여기에는 역사학자와 일어,중국어 능통자,한학자 그리고 문서 분석 전문가를 포함해 최소 30여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지적해두고 싶다.
8개월로는 어림도 없으며,예산 또한 3년간의 인건비와 취재비를 포함해 최소 수십억에서 100억대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일로 정부의 지원 아래 국책과제로 가능한 일임도 밝혀두고 싶다.
KBS가 8개월의 노력을 알리기 위해서는 임팩트한 밀정이 필요했을텐데,895명의 명단에서 하얼빈의 영웅 우덕순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웠고 ,따라서 안중근 의사나 단지회 소속 11명에 대한 밀정보고서도 없는 우덕순 지사를 하얼빈 조선인민회장이란 직책과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조금 신청서류,북만호텔 식사비 등을 묶어 이정과 같은 일반 밀정 범주에 넣어 같이 보도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모럴해저드다.
밀정이 얼마나 큰 역사의 죄인이며 낙인인데 명확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황만으로 애국지사를 밀정으로 단정하고 단죄할 수 있는 것인지, 공영방송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져본다.또한 방송사의 임팩트한 보도를 위해서라면 애국지사의 명예는 희생될 수 있는 것인지도 묻고 싶다.
먼저 기자는 KBS가 밀정이라고 보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우덕순이 하얼빈 조선인민회장 직책을 맡았던 사실은 전혀 새로운 사실도 아니며,학계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안이란 점을 밝혀두고 싶다.
하얼빈 조선인민회장이란 직책과 더 나아가 우덕순이 일본으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한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학계에서는 그를 변절자로 규정하는 것 자체도 명확성이 부족해 유보했는데 하물며 '밀정'이라니....그러한 단죄가 학계나 제천문화원 등에서 설득력있게 용인될 수 있을까?
먼저 KBS 보도에는 여러 모순들이 혼재돼 있다.
먼저 13일 방영된 KBS의 ‘시사기획 창’보도를 보면 약 50분 분량 가운데 13분 40초 부분부터 본격적인 밀정 추적을 시작하며,이재석 KBS 기자와 김광만 KBS 연구원과의 대화가 나온다.
이 대화에서 일본의 외교사료관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김광만 연구원은 "일본 외무성이 생긴 이래 취합된 모든 자료가 모여 있는 곳이 외교사료관"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어 "외교사료관에 보관된 자료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 대만,만주,조선에 나가 있던 영사관에 취합된 자료들"이라 설명하며,"불령단관계잡건이란 큰 책 타이틀안에 항목별로 수십 책이 있는데 이 '불령단관계잡건'이란 책에는 선교사의 가정에 출입하는 다수의 조선인을 (염탐했으며),왕래하는 사람들의 동향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이 안에 밀정들이 보고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동향보고가 있다"고 소개했다.
김광만 연구원은 불령이란 뜻을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쁜 조선인"이라 규정했는데 KBS 기자는 이를 독립투사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작성한 기밀문서에는 독립운동가와 밀정의 흔적이 함께 있었다"며,"독립영웅과 민족의 배신자가 뒤섞여 있던 혼란의 시대,일본과 중국에서 입수한 5만장의 기록을 토대로 밀정을 추적했다"며 밀정 추적의 서막을 알렸다.
그런데 KBS는 이 '불령단관계잡건'이란 책에 언급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구체적인 밀정보고 내용은 소개하지 않으면서도 우덕순 지사의 밀정행적을 추적했다.
다시 말해 이 '불령단관계잡건'이란 책속에 우덕순이 보고한 밀정 내용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임에도 KBS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 '불령단관계잡건'이란 자료는 대만,만주,조선 등에서 보고된 모든 밀정관련 외교문서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우덕순 지사의 밀정 행위는 만주 영사관에서 보내온 문서들이다.
그러나 이 '불령단관계잡건'이란 자료 어디에도 우덕순의 구체적 밀정행위는 없다.있었으면 KBS가 이를 보도하지 않았을리 없다.5만건의 문서를 8개월 동안 분석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자의 판단으로는 한국 취재진에게 공개될 정도의 문서라면 '불령단관계잡건'이란 타이틀에서 보듯 잡건의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고급정보가 들어있을리 만무할 것이다.
밀정을 추적하고 그 근거로 판단한 자료의 한계성이 뚜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덕순 지사를 밀정으로 단정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모습이 방송 곳곳에서 기자의 눈에 목격된다.
먼저 그들은 우덕순 지사의 밀정행위를 추적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간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1909년 하얼빈 의거 어디에도 우덕순의 밀정행위는 없다.그런데 하얼빈 의거 사건을 상당부분 할애했다.
이것은 우덕순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편집에 지나지 않는다.
하얼빈 어디에도 우덕순 지사의 밀정행위 내용은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그런데 1909년 하얼빈 의거의 편집 비중을 늘린 이유는 이 사건으로 정보수집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정보수집 필요성=밀정 필요성이란 등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우덕순은 수감된다.
정보수집 필요성=밀정 필요성이란 등식이 성립하더라도 감옥에 수감된 우덕순 지사와는 무관한 일임에도 1909년 하얼빈 거사 이후 정보수집 필요성과 함께 밀정의 필요성이 부각됐다며,여기에 우덕순 지사를 넣으려는 무리수를 범했다.
KBS는 한국외대 반병률 사학과 교수를 인터뷰 했는데,이 인터뷰에서 반 교수는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첩보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며 역시 KBS의 보도와 궤를 같이 했다.
일본의 밀정 운영에 대한 갈급성과 필요성을 강조해 우덕순 지사의 밀정 행위를 당연시하며,합리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는 편집이었다.
순전히 정황성과 개연성으로 우덕순=밀정이란 등식을 먼저 주입시키려는 편집이었다.
KBS는 1909년 하얼빈 의거와 일본의 밀정 필요성을 오버랩시키기 위해 역사 교수의 인터뷰까지 인용보도 했지만 정작 우덕순 지사의 밀정 행위는 이 이후 10년 이상이 지난 시간에도 단 한줄 보도된 바도 자료가 제시된 바도 없었다.
따라서 1909년 하얼빈 의거와 연관해 (우덕순=밀정이란) 사전 정지작업 시도는 작의성 편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1909년 이등박문 저격 사건과 밀정 필요성은 우덕순 지사와는 무관한 내용이 명백함에도 KBS는 우덕순 =밀정이란 당위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KBS가 우덕순 =밀정이란 등식과 관련해 제시한 자료들의 맹점은 없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KBS는 밀정보도 50분 분량 가운데에서 약 20분부터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는데,그 첫번째 근거로 1909년 하얼빈 거사로 옥고를 치르고 난 10년 후인 1920년대부터 이상한 행적을 보였다며,취재진이 입수한 1925년 공문서를 근거로 든다.
그 공문서에는 조선인민회장 우덕순의 이름이 등장한다.그러면서 "본회는 일본 외무성 보조를 받고 요즘 실적이 크게 올랐습니다.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올해도 보조금을 받고자 예산서를 첨부해 보냅니다.받들어 원하는 바입니다."란 문서 내용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 문서가 일본 외무대신 '시데하라'에게 조선인민회장 우덕순이 보낸 예산지원 요청서라 소개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사실일까?
또한 보조금은 곧 밀정비를 의미하는 것일까? 2부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자.(주은철 기자)
KBS가 보도한 895명의 밀정 명단에 제천 출신 우덕순 지사의 이름이 아프게 박혀있다.